김훈 작가의 산문 <라면을 끓이며>에서는 '찰스 다윈(1809~1882)'을 잠시 다루고 있다.
다윈은 영국의 생물학자이자 지질학자로서 '진화론'으로 19세기 이후 생물학에 혁명에 가까운 변화를 이끈 인물이다. 또한 그는 1850년 '종의 기원'을 발간하며 많은 사람들의 큰 관심과 함께 당시의 믿음과 모순된다는 이유로 종교계로부터 수많은 비난과 공격을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1831년 겨울, 22살 나이로 26살의 '로버트 피츠로이' 선장과 함께 영국 해군의 학술조사선 '비글호'를 타고 영국 포츠머스 항을 떠나 무려 5년간 마젤란 해협, 갈라파고스 등을 돌면서 자연과 생명을 관찰하면서 자연과 생명을 관찰, 분석, 그리고 기록하였다.
"라면을 끓이는 이야기와 다윈의 진화론이 무슨 관계가 있냐? 책을 똑바로 보기는 했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분명 책에 다윈의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라면을 맛있게 끓이는 법'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이 책에 대해서는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다루도록 하겠다.
김훈 작가는 책에서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빗대며 "시공 속에서 스스로를 변화시키지 않고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명은 없다"고 말한다.
맞는 말기이도 하지만 슬픈 이야기다. 항상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내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해야만 하는 그 미지의 수고로움과 고단함에 슬픔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생명이 진화했듯이 배도 오랜 시간 진화해 왔다.
배의 경우는 인류의 기술 혁신과 함께 수천 년 동안 재료, 구조, 연료, 그리고 안전과 환경 규제 등 다양한 측면서 진화해 왔다.
배의 탄생은 기원전 4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이집트 인들은 나일강 유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파피루스 갈대를 엮어 만든 배를 사용했다. 이 갈대배는 강과 호수에서 물자 수송, 어업, 그리고 종교 의식 등에 사용되었다.
이 후 등장한 배는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에서 등장한 나무를 이용한 선박이다. 이 시기의 배는 나무를 통으로 파내거나, 목재 판자를 이어 붙여 만들었으며, 이를 통해 대형 건축자재 등의 해상 운송, 군사적 목적, 장거리 무역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파피루스(Papyrus)'가 나오니, 어릴 때 세계사 수업시간에서 문명의 발상지에 대해 머리가 아프도록 외웠던 기억이 떠 오른다. 파피루스는 내구성과 방수성이 뛰어나 고대 이집트에서 배의 재료로 사용되었지만 인류가 최초로 사용했던 기록매체(종이)로도 사용되었다.
기원전 2500년경, 고대 이집트 목재선에 돛이 도입되면서 바람을 이용한 항해가 가능해진다.
노와 돛을 함께 사용하여 바람이 없을 때도 이용할 수 있었으며, 빠른 항해를 위하여 배의 앞부분(선수)을 뾰족하게 만들었다. 기원전 1550~300년에는 대형 목재선을 만들어 지중해와 홍해를 통한 국제 무역과 군사 원정도 이루어졌다. 당시 돛의 도입은 국제 무역과 교류에 기반이 된 이집트 선박 기술의 혁신으로 평가된다.
이후 나침반이 중국 한나라 시대(기원전 2세기~서기 1세기)에 처음 발명된다. 초기에 나침반은 풍수지리적 목적으로 사용되었다고 여겨지고 있으며, 이후 항해 도구로 발전하게 된다.
중세시대(서기 500~1500년)는 배가 대형화되면서 다양한 변화가 일어난다.
하나의 돛대만 사용하던 것이 여러 개의 돛대와 다양한 형태의 돛이 등장하면서 항해 거리가 늘고, 바람의 방향에 따라 효율적으로 항해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배 뒷부분(선미)에 달려 방향을 조절하는 방향타(rudder)가 등장함에 따라 보다 정밀한 항해가 가능해진다.
'범선(帆船, Sailing Ship)'이라는 말을 들어 봤을 것이다. 한자 "帆"은 돛을 의미한다. 즉, 바람의 힘을 이용해 돛으로 움직이는 배를 말한다. 이 범선은 13세기 이후 대양을 항해할 수 있도록 발전했으며, 15~17세기 대항해시대에서 해상 무역과 군사, 탐험의 핵심 수단이었다.
18~19세기 산업혁명과 함께 배는 또다시 혁신적인 변화를 맞는다.
18세기 들어 면직물 수요가 늘면서 대량 생산을 위해 노동인력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동력이 필요했다. 이 때 '제임스 와트(1736~1819)'는 '토마스 뉴커먼(1663~1729)'이 발명한 초기 증기기관의 효율을 개선하여 산업 생산성을 높였고, 이는 면직물 생산, 석탄 채굴, 제철 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면서 산업혁명의 핵심동력이 된다. 산업혁명은 단순하게 기술 발전과 산업 구조의 변화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 및 정치 구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세기 초, 드디어 증기기관이 배에 적용되기 시작하고 1807년 미국의 발명가이자 엔지니어인 '로버트 풀턴'이 상업용 증기선 '클러몬트(Clermont)'호를 개발하여 운항에 성공하면서 증기선 시대의 서막을 알린다. 초기 증기선은 패들 휠(외륜)로 추진했으며, 주로 강이나 연안에서 운항되었다.
참고로 영국에서 세계 최초의 선급(Classification Society)인 'Lloyd's Register'가 1760년에 설립되면서, 선박의 상태와 안전성을 등급으로 정하여 보증하는 시스템이 도입된다. 이는 원거리 해상 무역 중에 다양한 위험에 노출되는 배와 화물, 그리고 선원의 안전을 보장할 필요성에 따른 것이다(이와 관련해서는 블로그 글 <(알쏠바잡-6) 해상 보험, 저널, 그리고 선급의 시작점: 로이즈 커피하우스>를 참고하기 바란다).
19세기 중반부터는 증기기관 외에 철이 배의 건조에 본격적으로 사용된다.
철로 만들어진 선박은 더 크고 튼튼하며, 화물 적재량도 늘어나고 유지·보수도 쉬워진다. 1880년대부터는 제철 기술의 발달로 철보다 더 강하고 가벼운 강철이 사용되었고, 추진 방식도 패들 휠에서 프로펠러(Propeller)로 전환되면서 배의 속도와 효율이 크게 향상된다. 당시 영국 해군은 바람 없이도 일정 속도를 낼 수 있는 증기기관을 도입하려 했으나, 배 양측에 장착된 커다란 외륜 때문에 함포를 적재할 공간이 적어지는 것이 문제였다. 함포 수의 감소는 당시 군함에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이 때 영국 엔지니어 '프랜시스 스미스'가 선박용 프로펠러를 개발하면서 이러한 약점을 깔끔하게 해결한다. 지금도 프로펠러는 선박의 메인 추진기로 사용되고 있다.
참고로 세계 최초의 철제 선박은 1818년 건조된 영국의 여객선 '발칸(Vulcan)'호며, 프로펠러를 장착한 세계 최초의 선박은 1838년 런던 랫클리프 조선소에서 건조한 상선인 '아르키메데스(SS Archimedes)'호다.
20세기는 내연기관의 발명, 그리고 안전과 환경 규제가 배의 진화를 이끈 시기다.
20세기 초, 선박의 동력원은 기존 증기기관에서 내연기관(디젤엔진)과 증기 터빈으로 바뀌게 된다. 특히 디젤엔진은 제1차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쟁 수행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잡아, 현재까지 배의 주 동력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선박용 디젤엔진은 1903년에 등장했으며, 1912년 덴마크에서 건조된 '셀란디아(Selandia)'호는 세계 최초의 디젤 추진 대형 상선이다.
이 시기에는 선박과 연료의 대전환이 함께 일어난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까지는 선박의 주 연료는 석탄이었으나, 디젤엔진의 개발로 석유로 전환된다. 석유는 석탄보다 열효율이 높아 저장공간이 줄어들었고 저장과 취급이 용이했으며, 선박 내 공간 배치가 자유로워 선박 설계에 많은 유연성을 제공했다. 그리고 전시에 배의 속도 개선과 함께 석탄보다 연기가 적게 배출되어 적에게 잘 발각이 되지 않는 등 큰 장점을 가졌으며, 파이프로 쉽게 주입할 수 있어 인력 부담과 주입 시간이 줄어들었다.
지금도 만화나 영화에 증기기관차에서 사람이 삽으로 석탄을 퍼서 뜨거운 화실에 집어 넣는 장면이 한 번씩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장면을 볼 때면 한 번씩 "얼마나 고된 노동이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이 시기에는 조타 장치, 통신 및 항해 장비 등도 자동화·전자화되면서 선박 운항의 안전성과 효율성이 크게 개선되었다. 또한 컨테이너선, 유조선, 벌크선, 자동차 운반선 등 다양한 선박이 등장하면서 해운업의 생산성과 효율성이 비약적으로 증대되었며, 항공모함, 잠수함 등 새로운 개념의 군함 등장하기도 했다.
또한 역사적으로 빼놓을 수 없는 1912년 '타이타닉(Titanic)'호 침몰 사고는 국제 안전 규제의 필요성을 부각시켰으며, 이에 따라 1914년에 구조설비, 통신, 구조정 등 필수 안전장비와 운영기준을 규정하는 국제해상인명안전협약(SOLAS)가 탄생하게 된다(이와 관련해서는 블로그 글 <(알쏠바잡-3) 타이타닉호 사고, 그리고 SOLAS의 탄생>을 참고하기 바란다).
그렇다면 당시 석유 자원이 거의 없었던 영국은 어떻게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었을까?
제1차 세계대전 직전, 당시 해군 장관이었던 '윈스턴 처칠(1874~1965)'은 영국 해군의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전환하는 결정을 내린다. 두 번의 세계대전 모두에서 영국은 미국으로부터 대규모 석유 수입을 했지만, 페르시아(이란), 메소포타미아(이라크) 등 식민지와 해외 이권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해군과 군수산업에서 필요한 석유를 안정적으로 확보했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부분은 영국은 1901년 페르시아 정부로부터 석유 채굴권을 얻어고 1908년에 대형 유전이 발견되면서 앵글로-페르시안 오일 컴퍼니(현 BP)가 설립되었다는 사실이다.
20세기 후반부터는 환경오염과 온실가스 감축이 중요한 이슈로 대두되면서 선박과 연료의 패러다임이 다시 변하고 있다.
연료의 경우에는 기존 액체연료에서 탄소 개수가 적은 기체연료로 변한다고 볼 수 있는데, 현재 LNG, LPG, 메탄올, 암모니아, 수소 등 그야말로 연료의 춘추전국시대라고 할 수도 있겠다.
게다가 21세기 들어서는 인공지능, 원격제어, 자율운항 등 최신 기술이 배에 적용되면서 진화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해운부문의 노력에 대해서는 <(알쏠바잡-14) 해운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력, 어디까지 왔나?>를 참고하기 바란다.
향후 5~10년은 조선과 해운을 포함한 해사산업의 패러다임이 크게 변할 것이고, 그 변화는 매우 빠르게 전개될 것이다.
영국은 인력도 석유도 부족한 나라였지만, '산업혁명'이라는 말 그대로 산업이 혁명적으로 바뀌는 시기에 혁신적인 기술 개발과 함께 부족한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석유산업과 해사산업을 포함한 모든 산업에서 시장과 정책을 선도했다는 점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올해 2월 런던 출장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화창한 날씨의 토요일, 아침 시간을 이용해서 그리니치 천문대(Royal Observatory Greenwich)를 거쳐 국립해양박물관(National Maritime Meseum)을 돌아보았다.
박물관 앞에서 영국의 넬슨 제독이 1805년 트라팔가 해전 당시 사용한 목조 범선인 'HMS 빅토리(HMS Victory)'호의 모형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역사를 기억하고, 또 기억한다. 지금은 해양강국으로서 영국의 위상이 옛날의 모습과 다소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잊지않고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이와 국가에게는 꿈과 현실이 될 수 있다.
'알아두면 쏠쏠한 바다 이야기 > 조선, 해양, 그리고 해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쏠바잡-18) 배는 왜 오뚝이처럼 넘어지지 않을까? (0) | 2025.05.11 |
---|---|
(알쏠바잡-10.2)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 해운 얼라이언스 (15) | 2025.05.06 |
(알쏠바잡-17) 배는 주인과 국적이 다를 수 있다: 편의치적국이란? (4) | 2025.04.27 |
(알쏠바잡-16) 국제 해운의 초크포인트는 어디인가? (2) | 2025.04.12 |
(알쏠바잡-15.2) 북극항로: 매력적이지만 풀지 못한 문제들 (3) | 2025.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