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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쏠쏠한 바다 이야기/조선, 해양, 그리고 해운

(알쏠바잡-15.2) 북극항로: 매력적이지만 풀지 못한 문제들

"얼음이 녹으면?"
10년도 훨씬 전에 받은 질문이다. 나는 망설임없이 "당연히 '물'이되지!"라고 답하며 지인이 미리 쳐 놓은 그물에 여지없이 걸려들었고, "역시 공대생이라니깐!"이라는 놀림을 받았다. 얼음이 녹는다고 꼭 '봄만 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북극에 얼음이 녹으면?"
이 질문에도 다양한 답변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린 아이들은 북극곰을 자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좋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후학자들은 지구온난화의 심각성과 함께 기후변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것이고, 일부 국가나 해운사 및 조선사는 북극항로가 열리고 있다고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그 '북극항로'가 열리고 있다.
2023년 말부터 수에즈 운하로 가는 바브엘만데브 해협(Bab el-Mandeb Strait)에서 에멘 후티(Houthi) 반군이 상선을 공격함에 따라 군사적 긴장 고조로 해운선사들은 자사 선박의 안전을 위하여 유럽-아시아 항해를 위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항로를 포기하고, 희망봉을 우회하고 있어 공급망 차질과 함께 운임이 급등하기도 했다.
이런 홍해사태로 인해 해운사들은 희망봉을 우회하는 대체 경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 전체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알쏠바잡-1) 희망봉 우회항로와 선박운임>을 참고하기 바란다).
 
이런 상황에서 '북극항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북극항로는 북극해를 따라 유럽, 북미, 그리고 아시아를 연결하는 해상운송 경로로 기존 수에즈 운하를 경유하는 경로보다 훨씬 짧은 거리를 제공한다. 이로 인해 북극항로는 운송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어 수에즈 운하를 대체할 수 있는 항로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홍해사태로 북극항로에 대한 전 세계의 이목이 더욱 집중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2024년에 <2024 Review of Maritime Transport: Navigating Maritime Chokepoints>를 통해 2개의 운하(파나마 운하, 수에즈 운하), 5개의 해협(바브엘만데브 해협, 호르무즈 해협, 터키 해협, 지브롤터 해협, 말라카 해협), 그리고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을 8개의 해운 병목지점(chokepoints)으로 지목한 바 있다. 따라서 북극항로를 이용할 경우 3개의 주요 해상무역 초크포인트(말라카 해협, 바브엘만데브 해협, 수에즈 운하)을 통과하지 않는 이점도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초크포인트'란 국제 항로의 주요 길목에 위치하여 운송의 효율을 높임과 동시에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해운 물류 네트워크의 마비를 초래할 수 있는 지점을 말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블로그의 다른 글 <(알쏠바잡-16) 국제 해운의 초크포인트는 어디인가?>를 참고하기 바란다) .
아시아-유럽 항해에서 상품무역의 대부분을 운송하는 컨테이너선이 기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경우, 중간 기항지 없이 17노트(knot) 속도로 운항한다면 27~29일 정도 소요된다. 그러나 북극항로를 선택할 경우 부산항-로테르담항 기준으로 약 10일 정도 단축할 수 있어 매력적인 항로임에 분명하다.
 

기존항로와 북극항로 거리 및 운송기간 비교(출처: 한국해양수산개발원, 2021)

 
북극항로는 크게 세 가지 주요 항로로 나뉜다.
- 북동항로(NSR, Northern Sea Route):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항로로 러시아 시베리아 북쪽 연안을 따라 이어지는 경로
- 북서항로(NWP, North-West Passage): 북미와 유럽을 연결하는 항로로 캐나다 북극해 아치펠라고를 통과하는 경로
- 북극점 횡단항로(TSR, Transpolar Sea Route): 북극점을 지나가는 항로로 북극항로 중 가장 짧은 거리를 제공하지만 현재까지 극한 환경 때문에 상업적으로 거의 활용되지 않는 경로(아래 그림에서도 'Future Contral Arctic Shipping Route'라고 명시하고 있음)
 

주요 북극항로 (출처: ICCT, 2022)

 
북극항로에서 해빙이 점차 줄어들면서 운항환경 개선과 새로운 항로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어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또한 북극과 인접한 주요 국가에서는 경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정치, 외교, 에너지 안보 등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하며 북극에 대한 물류 네크워크를 개발하고 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알래스카 내 액화천연가스(LNG) 가스관 건설 등 자원 개발과 관련한 규제 해제 움직임과 함께 한국과 일본에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사업 참여를 압박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사실 누구보다 북극항로에 대한 야망은 러시아가 크다.
러시아는 대부분의 해안선이 북극해와 접해 있어 겨울철 결빙 문제로 인해 일년 내내 얼음이 얼지 않는 부동항(year-round ice-free port) 확보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이에 러시아는 2019년 북동항로 개발계획(Plan for the Development of NSR until 2035)을 채택한 바 있다. 본 계획은 북극항로 개척에 필요한 인프라 개발, 천연자원 개발을 위한 선대 구축, 신규 인공위성 및 기상장비 발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 계획에는 쇄빙선 함대(핵추진 쇄빙선 확대 포함)를 확장하고, 비행장과 관련 인프라를 새롭게 구축한다는 목표도 포함되어 있다.
 
이 중 쇄빙선(icebreaker) 함대 확장이 눈에 띄었다.
물론 작년에 조국혁신당이 창당하면서 '쇄빙선'이라는 말을 자주 써서 그런 것도 있고, 내가 이전에 조선소에서 일할 때 직접 쇄빙선의 기본설계를 한 경험이 있어서 더욱 눈에 띄었다. 또한 2년 전에 한 조선소를 방문했을 때 러시아에 인도되지 못하고 조선소 안벽에 정박해있는 극지운항용 선박을 본 점과 최근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북극항로 개척 파트너로 한국 조선소에 신호를 보내고 있는 부분도 작용했으리라 본다.
쇄빙선은 극지방의 두꺼운 얼음을 깨고 일정한 속도로 항해하기 위해 설계·건조되기 때문에 부가가치가 가장 높은 선박으로 분류된다. 한국은 세계 최초의 쇄빙 LNG선 수주와 함께 현재 운항하는 대부분의 쇄빙 LNG선을 건조하였다.
그러나 사실 전 세계 쇄빙선의 약 80%를 설계하고, 60%를 건조하는 조선소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핀란드다. 이미 1980년대 후반, 러시아의 원자력 쇄빙선 2척을 건조한 나라도 핀란드다.
 
2030년 경에는 북극 중심을 통과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출처: 극지연구소, 2024).
이 때가 되면 겨울에는 얼지만, 여름에는 북극의 얼음이 모두 녹는 환경으로 바뀔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향후 북극항로가 상업적으로 더욱 활성화된다면,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북극항로의 허브 역할을 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또한 한국은 2013년부터 북극이사회(Arctic Council)의 정식 옵서버(obserber)로 활동 중으로 북극항로는 유럽 시장과의 거리를 단축시키는 대체 항로일 뿐만 아니라, 한국 해양산업에 흥미로운 시장이다.
참고로 북극이사회는 캐나다,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러시아, 스웨덴, 미국의 8개 회원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핀란드와 미국의 협력 움직임이 최근 활발하다. 2024년 7월에 핀란드는 미국과 캐나다와 함께 ICE 협약(ICE Pact, Icebreaker Collaboration Effort Pact)을 통해 극지 쇄빙선 건조를 위한 기술과 전문성을 공유하고,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 향후 10년간 70~90척의 쇄빙선을 건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후 2025년 3월에는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플로리다주를 방문해 쇄빙선 구매와 개발에 대한 양국 협력을 추가적으로 논의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출처: SBS 뉴스, 2025.3.29.).

이러한 협력은 북극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에 따라 커지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에 대응하고, 쇄빙선 함대를 확충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여전히 풀어야하는 문제가 있다.
첫 번째는 북극 지역의 환경 문제다. 실제로 글로벌 해운선사인 CMA CGM, MSC, 하파그로이드 등은 환경 문제를 이유로 북극항로를 이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참고로 국제해사기구(IMO)의 결정에 따라 2024년 7월 1일부터 북극해에서 중유(HFO; Heavy Fuel Oil)의 연료 사용 및 운송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현재 북극의 해빙을 가속화시키는 블랙카본(Black Carbon)에 대한 규제를 논의하고 있다.
두 번째는 운항 시기 제한이다. 최근 러시아와 중국이 협력을 통해 연중 항해가 가능하도록 인프라 개선과 기술개발은 하고 있지만 여전히 겨울철에는 운항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해빙과 함께 북극 운항 관련 인프라 및 쇄빙선 구축 등이 북극항로 이용 가능성을 높일 것으로 판단된다.
마지막으로 풀어야하는 문제는 지정학적 불안정성다. 북극항로는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으로 정치적 민감성이 높은 지역이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미국과 유럽의 러시아 제재와 같은 상황이 발생할 경우 언제든지 항로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
 
앞으로 북극항로가 활성화되면 글로벌 물류 네트워크의 중심축이 이동하면서 조선과 해운, 그리고 항만 및 물류업계 전반에 걸쳐 중요한 변화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 변화를 이끄는 중심에 한국이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