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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쏠쏠한 바다 이야기/조선, 해양, 그리고 해운

(알쏠바잡-18) 배는 왜 오뚝이처럼 넘어지지 않을까?

'무궁화 행진곡'이라는 노래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무궁무궁 무궁화, 무궁화는 우리 꽃, 피고 지고 또 피어 무궁화라네"라는 노랫말로 시작된다. 나의 경우에는 초등학교 행사 때 한 번씩 불렀었다. 참고로 무궁화는 조선 말 개화기를 거치면서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란 노랫말이 애국가에 삽입된 이후 더욱 우리의 사랑을 받아왔다. 또한 일제 강점기에는 무궁화가 민족정신과 독립의 상징으로 부각되었고 독립운동가들과 국민들이 무궁화 보급운동을 펼치면서 광복 이후 자연스럽게 나라꽃(國花)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현재 근무하는 회사 건물 1층에 무궁화 화단이 있어, 매년 6월 말 정도되면 무궁화가 피기 시작하는 것을 본다. 정말 꽃이 계속해서 피고 지는 것을 직접 볼 수 있어 한 번씩 옛날에 불렀던 그 노래가 머릿속으로 소환되기도 한다.
 
당시 초등학교에서 '무궁화'를 '오뚝이'에 비유하곤 했었다.
오랜 외세의 침략과 시련 속에서도 다시 일어선 우리 민족의 불굴의 의지와 정신을 나타내는 '무궁화'와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가 닮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사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씁쓸한 마음이 들곤 했다.
 
배가 옆으로 넘어지지 않는 이유에는 바로 이러한 '오뚝이'의 원리가 있다.
오뚝이는 아래쪽을 둥글고 무겁게 만든 장난감이기 때문에 기울어져도 무게 중심이 매우 낮아 돌아오려는 힘이 작용해 자연스럽게 원래의 똑바로 선 상태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 "돌아오려는 힘"을 우리는 '복원력(復元力)', 영어로는 'Restoring Force'라고 한다. 일반적인 물리 개념에서 복원력은 평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에서 외력(외부의 힘)에 의해 평형이 깨어졌을 때 원래 상태로 돌아가려는 힘을 말한다.


그러나 배에서의 복원력은 영어로 'Stability'라고 한다.
아마도 망망대해에서 거친 파도와 바람을 해치며 나아가는 배에 있어서 복원력의 상실은 곧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Restoring Force'라고 단순히 붙이기 보다는 안전성을 의미하는 단어인 'Stability'라고 부르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배의 복원력은 무게중심과 관계가 깊다.
배를 물에 집어넣지 않고 가만히 놓아두면 배의 형태나 무게 배치에 따라 중심점이 생기는데, 이를 무게중심(Center of Gravity, G)이라고 부른다. 또한 배를 물에 띄우면 배가 밀어낸 물의 무게(배수량)만큼 부력(Buoyancy)을 받는데, 이런 부력의 중심이 부심(Center of Buoyancy, B)이다.
배가 가만히 물 위에 떠 있을 때에는 아래 그림과 같이 G에서 아래로 작용하는 중력과 B에서 위로 작용하는 부력이 동일 수직선 위에서 같은 힘으로, 서로 반대방향으로 작용해 균형을 유지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무게중심은 위치가 낮을수록 복원력이 좋다. 쉽게 말해 위쪽이 더 무겁게 설계된 배, 또는 그런 형태로 개조한 배일수록 뒤집히기 쉽다는 뜻이다(이 부분을 잘 기억해두기 바란다).

 

 

배의 복원력의 원리 (출처: 해양수산부 블로그)

 

그러나 배가 선회(회전)하거나 파도 등의 외력에 의해 기울어지면 물의 잠진 부분의 배의 형상에 따라 B의 위치가 B1으로 변하면서(G의 위치는 동일하다), 중력과 부력의 작용선이 엇갈림이 발생하게 된다. 이 때 부력이 작용하는 선과 중력이 작용하는 선과의 교점을 경심(Metacenter, M)이라고 하고, 배의 무게중심과 경심 사이의 거리 GM을 메터센터 높이(Metacentric Height)라고 부른다. 바로 이 GM 값이 대표적인 복원성 계수로서 양수(+), 또는 음수(-)인지에 따라 선박의 기본적인 안전성을 판단하게 된다.

다시 말해 아래 그림과 같이 G가 M보다 아래에 있으면(GM이 양수이면) 중력과 부력이 반시계 방향으로 함께 작용해서 배를 원래의 위치로 돌리는 힘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러나 배를 계속해서 기울인다고 생각해보자. M이 점점 G에 가까워지다가 결국에는 M이 G보다 낮아지게 되고, 이 두 힘은 이제는 거꾸로 시계 방향으로 작용하면서 배는 전복하게 된다.

그렇다고 GM 값을 크게 해서 선박의 복원력을 높이면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다. 복원력이 너무 크면 배가 신속하게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기 때문에 좌우로 자주 흔들려서 선원이나 승객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선박에 실려있는 화물에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을 본 적이 있는가?

이 영화에서는 '전열함'이 등장한다. 전열함이란 대포를 2~3층에 걸쳐 배치해서 상대를 향해 포격을 가할 수 있게 만든 전투함이다. 그런데 영화에 등장하는 전열함을 자세하게 본다면 대포를 편하게 갑판 위에 올려놓고 쏘는 것이 아니라 배 내부에 두고 양면에 있는 포문을 통해 포를 발사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상대가 대포가 어디있는지 모르게 하려고 방수처리한 포문까지 달아서 포를 발사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배의 안전성을 위해 무게중심을 낮추고, 동시에 포격할 경우 배에 가해지는 반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대포를 갑판 아래에 배치한 것이다. 참고로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넬슨 제독이 탑승했던 HMS 빅토리호는 무려 104문의 대포를 장착하고 있었다.

 

HMS 빅토리호 모습(출처: Flickr (John Eggett 그림, 1987))


최근 세월호참사 11주기를 앞두고 세월호 전복과 대규모 인명 피해(시신 미수습자 5명을 포함한 304명 사망) 원인을 규명한 해양수산부 목포지방해양안전심판원의 심판 내용이 공개되어 주목 받았다.

세월호는 2014년 4월 16일 오전, 전라남도 진도군 앞바다에서 급격하게 항로를 변경(변침)하던 중 중심을 잃고 기울어져 표류하다가 전복되어 침몰했다. 당시 나는 영국에 취업해서 4월부터 일을 하고 있었다(관련 내용은 블로그의 다른 글 <(역사는 반복된다) 세월호 참사 & 비상계엄, 그리고 자유민주주의>를 참고하기 바란다).
심판 내용에 따르면 세월호 전복사건은 선사와 선원의 안전관리 소홀로 기준에 못 미치는 복원력을 가진 세월호가 과도한 양의 화물을 안전하지 못한 상태로 항해하던 중 변침 과정에서 조타기(rudder) 이상 동작으로 과도하게 선회하면서 발생했다고 한다. 또한 사고 발생 후 선장을 포함한 선원들이 승객에 대해 적극적인 구호조치를 하지 않은 것을 주요 원인으로 적시하고 있다. 세월호는 여객 정원을 늘리기 위해 배를 증축 및 개축하면서 무게 중심이 높아져 복원성이 낮아진 상태에서 '복원성 계산서'에서 허용한 화물량인 1,077톤보다 2배 많은 2,214톤의 화물을 실었고, 평형수(Ballast Water)는 복원성에 필요한 1,566톤의 절반인 800톤에 불과했다는 것이 자세한 설명이다(출처: 내일신문, 2025.4.14.).

 

많은 승객과 화물을 실어야 하는 여객선은 높고 크게 만든다.

무게중심이 위에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로 만들어진다는 얘기다. 물론 설계상 운항에 문제가 없도록 만들지만 세월호처럼 많은 화물을 싣고 나면 무게중심이 위쪽으로 올라간다. 나는 예전에 조선소 기본설계에 근무해서 다른 종류의 선박에 비해 여객선의 GM 값을 높게 맞추기가 힘들다는 것을 물론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배의 복원성은 생명과 직결된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이를 우리는 회복탄력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넘어지기 전에 미리 대비하거나, 처음부터 설계나 계획을 잘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혹자는 사고가 나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더욱이 국민의 안전이나 국가의 안위와 직결되는 문제일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