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연방해사위원회(FMC)가 전 세계 해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주요 초크포인트(Primary Chokepoints)에 대한 종합 조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초크포인트란 두 지역을 연결하는 좁은 통로로 지정학적 또는 전략적 중요성을 가지는 곳을 말한다. 흔히 병목지점(Bottleneck)과 혼용하여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병목지점은 교통의 경우 좁은 도로나 다리 등으로 인해 차량 흐름이 제한되거나 느리게 만드는 지점을 말한다.
초크포인트을 이야기하려고 하니 갑자기 영화 '명량'이 떠오른다.
이 영화는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좁은 수로를 이용해 일본 수군을 격파한 명량 해전(1597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해전은 폭이 좁은 명량 해협(울돌목)의 지형적 특성을 전략적으로 이용하여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일본의 대규모 함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역사적인 사건이다. 133척을 맞아 13척의 함선으로 병목지점인 명량 해협을 전투에서 중요한 초크포인트로 인식하고 이를 전략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명량 해협은 우리나라 남해와 서해을 연결하는 좁은 통로로서 당시 전략적으로 중요한 초크포인트였던 것이다.
참고로 명량(鳴梁)은 고유어 '울돌목'을 옮긴 것이다. 울돌목은 빠른 물살이 암초에 부딪치며 소용돌이치는 물 울음소리가 20리 밖까지 들린다고 하여 울돌목·울두목·울둠벙으로 불렸다고 한다. '울'은 물이 우는 것을, '돌'은 물이 도는 것을, 목은 좁은 수로를 각각 의미하고 있어, 이곳이 얼마나 조류가 빠르고 물살의 변화가 심한지 알 수 있다.
또 쓸데없는 이야기가 길어졌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번 미국 FMC가 지정한 7개의 주요 초크포인트는 어디일까?
FMC-2025-0005로 지정된 이번 조사 대상은 1)영국 해협, 2)말라카 해협, 3)북해 해협, 4)싱가포르 해협, 5)파나마 운하, 6)지브롤터 해협, 7)수에즈 운하다. 이와 관련하여 FMC에서는 “전 세계 해상 초크포인트의 제약이 외국 정부의 법률, 규정 또는 관행이나 외국 국적 선박 소유자 또는 운영자의 관행으로 인해 불리한 해운 여건을 조성했는지를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참고로 FMC는 미국의 국방 및 안보를 위해 미국 해상무역에 대한 규제를 담당하는 대통령 직속기구이자 정부 독립기관이다.
이러한 FMC 말은 사실 7개 지점을 자국의 경제, 정치, 안보 등의 관점에서 외부 환경 리스크가 큰 중요한 지역이라고 바라보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올해 초 미국 트럼트 대통령이 파나마 운하를 중국에게 주지 않았다면서, 중립 조약을 어긴 파나마로부터 운하를 되찾겠다고 말한 부분과 일맥상통한다.
아래 그림은 2021년에 GIS(Geopolitical Intelligence Services)가 파악한 초크포인트를 보여주고 있다.
해운은 국제무역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바다를 통해 전 세계 상품의 80% 정도를 운송하고 있다. 따라서 초크포인트는 해상 무역에 필수적이지만 통로가 협소하고 교통이 혼잡하며 정치, 군사, 기후 등의 리스크에 매우 취약한 경로로 이러한 지점의 장애는 세계 무역과 공급망에 직접적인 혼란과 비용 상승을 초래하게 된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블로그의 글 <(알쏠바잡-8) 글로벌 물류의 동맥, 파나마 운하 & 수에즈 운하>를 참고하기 바란다) .
또한 일부 항로는 선박의 수심 및 크기 등의 제한이 있다(이 부분은 블로그의 다른 글 <(알쏠바잡-9) 배도 체급에 따라 부르는 말이 있다(파나막스, 수에즈막스 등)>을 참고하기 바란다).

아울러 아래와 같이 8개의 주요 초크포인트의 환경적·지정학적 위험 수준을 GIS가 조사하여 발표한 바 있어 참고하기 바란다.

우리는 이와 함께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지정한 초크포인트와 비교해서 볼 필요가 있다.
UNCTAD에서 지정한 초크포인트는 국제 항로의 주요 길목에 위치하여 운송의 효율을 높임과 동시에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해운 물류 네트워크의 마비를 초래할 수 있는 지점을 말한다. 참고로 UNCTAD는 개발도상국의 산업화와 국제무역 참여 증진을 지원하기 위해 1964년에 설립된 유엔의 정부간 기구이다.
UNCTAD가 <2024 Review of Maritime Transport: Navigating Maritime Chokepoints>를 통해서 발표한 8개의 초크포인트는 2개의 운하(파나마 운하, 수에즈 운하), 5개의 해협(바벨만데브 해협, 호르무즈 해협, 터키 해협, 지브롤터 해협, 말라카 해협), 그리고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Cape of Good Hope)이다.
미국 FMC와 UNCTAD가 지정한 초크포인트를 비교해 보면 파나마 운하, 수에즈 운하, 말라카 해협과 지브롤터 해협은 두 기관 모두 핵심 초크포인트로 지정하고 있다. 그러나 FMC에서는 말라카 해협을 초크포인트로 지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해협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싱가포르 해협과, 특이하게 북극 해협을 지정한 점을 알 수 있다. 이는 최근 싱가포르 해협이 있는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움직임과 북극 해협에 대한 러시아의 움직임이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판단된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블로그의 다른 글 <(알쏠바잡-15) 북극항로: 매력적이지만 풀지 못한 문제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두 기관이 지정한 초크포인트와 주요 수송 품목을 아래의 표와 같이 나타내어 보았다.

이 지점에서 두 기관의 초크포인트 지정 의견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아래 비교 표 참고).
UNCTAD는 전 세계 해상무역 흐름과 공급망 충격을 중심으로, 화물 점유율과 대체항로 가능성에 초점을 둔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반해 FMC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미국의 정치, 안보, 환경 리스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로 군사적 영향력 확대, 자원 및 에너지 개발, 영토에 대한 욕심이 다분히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참고로 FMC는 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다양한 잠재적 집행 권한을 사용할 수 있다. 여기에는 대외 무역 운송에 영향을 미치는 규정을 발표하고, 규정을 준수하지 않는 국가의 선박에 대한 미국 항만 접근을 거부하며, 조사 청문회를 실시하고, 소환장과 증언을 통해 증거를 수집할 수 있는 권한이 포함된다.

앞서 '울돌목'의 '목'은 좁은 수로를 의미한다고 했다.
이순신 장군이 울돌목이라는 좁은 수로를 명량 해전에서 중요한 초크포인트로 인식하고 이를 전략적으로 이용한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목'은 우리 몸에서도 중요한 통로 역할을 한다.
목은 음식과 공기가 위와 폐로 각각 전달되는 통로이면서, 뇌로 가는 혈관인 척추동맥과 경동맥의 통로이기도 하며, 뇌와 연결되는 여러 신경이 지나가기도 한다. 따라서 목은 생명과 결부되어 있으며, 목 건강은 전신 건강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어에는 '목숨'이라는 단어에 아예 '목'이라는 단어가 들어있으며, 우리나라 사극에서 죽이겠다는 표현으로 "이놈의 목을 쳐라" 등의 대사를 종종 들을 수 있을 정도다.
김지수 씨의 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는 '목'을 연결과 조화의 상징으로 나타내고 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문학자이자 지성인이신 이어령 선생은 특히 '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머리와 가슴을 잇는 목", "손과 발을 잇는 손목과 발목"처럼 '목'은 신체 각 부위를 연결하듯이, 사람과 사람, 문명과 자연,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연결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그는 이 시대의 리더란 '목'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21세기 리더란 단순히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갈등을 해소하고 서로 다른 것을 이어주는 '조정자'여야 한다고 말했다.
2025년 4월 4일, 대통령 탄핵 선고가 있었다.
현재 대한민국은 정치적 혼란, 저출산·고령화 문제, 경제·외교 문제, 양극화 등 다방면에서 중요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목'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진정한 리더가 많이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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