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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쏠쏠한 바다 이야기/조선, 해양, 그리고 해운

(알쏠바잡-10.1)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 해운 얼라이언스

2008년 9월 15일, 미국 4위 투자은행인 리먼브라더스(Lehman Brothers)가 파산하던 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거품은 터지기 마련이다. 탐욕도...
이 사실을 확인이라도 하듯이 금융위기는 우리나라 금융시장에도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2008년 초 코스피(KOSPI) 지수는 1,900포인트 수준에서 약 938포인트(10월 24일 종가 기준)로 반토막이 났다. 급기야 원/달러 환율은 940월에서 1,570원으로 급등했다(이 글을 쓰고 있는, 그리고 대통령 비상계엄으로 인한 탄핵 정국인 현재(2024.12.27.) 환율은 1,485원이다). 참고로 IMF 외환위기(1997~1998년) 때에는 800~900원 수준의 안정적인 원/달러 환율이 외국 자본의 대규모 유출에 따라 1,900원 넘게 급등한 적도 있었다.
 
이러한 금융위기로 국제 정세 및 경제상황에 크게 영항을 받는 조선소 역시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당시 나는 조선소 기본설계(계약설계)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다만 금융위기 이전 조선업 호황기로 대규모 수주 잔고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대부분 달러 결재를 하는 조선소로서는 환율 상승으로 단기적으로 추가 이익이 발생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후 조선업 불황이 본격화되면서 몇 년간 구조조정과 생존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이어 나가야 했다(금융위기 이후 프랑스 선사 CMA CGM이 온갖 코멘트를 해대며 배의 인도시기를 늦추었으며, 당시 그 컨테이너선들이 울산 앞 바다에 오랫동안 떠 있었다).
 
특히 해운산업은 세계 무역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당시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2009년 세계 교역량은 전년 대비 약 10~12% 감소하였고, 금융위기 전 투기적으로 발주한 선박들이 인도되면서 공급 과잉 문제가 심화되면서 운임은 급격히 하락하게 되어 대부분의 해운선사들은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였고 일부 선사들은 파산하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당시 세계 7위 규모의 글로벌 해운선사였지만 2017년 2월에 파산한 한진해운이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향후 다른 글에서 다룰 예정이다).
 
이런 상황과 달리 당시 해운선사들의 움직임을 보며 내가 떠올린 단어는 '치킨게임(Chicken Game)'이다.
내부적인 상황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대형 선사들은 이 시기에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또는 경쟁 선사를 합병 또는 파산시키기 위해) 운임을 더 낮추거나 심지어 덤핑 운임을 제공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시기로 비즈니스 세계의 냉엄한 현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참고로 '치킨게임'은 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이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극단적 게임에서 나온 말이다. 도로에서 두 운전자가 정면으로 돌진하다 충돌 직전에 핸들을 돌리지 않으면 양쪽 모두 죽게 되지만, 누군가 피한다면 먼저 피하는 사람이 겁쟁이(chicken)가 되어 게임에 지게 된다. 이 말은 냉전시절(1950년대~1980년대)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 간 군비 경쟁을 빗대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출처: 위키백과). 대표적인 사례로는 대형마트들의 극단적 가격 경쟁과 같은 마케팅 전략을 들 수 있다.

 

아래 표는 금융위기 직후(2010년)와 최근(2023년 12월) 기준의 컨테이너선사의 순위를 보여주고 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2016년에 APL이 CMA CGM에 합병된 점, 같은 해에 CSCL이 중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 COSCO Group과 합병하여 COSCO Shipping Group을 설립한 점, 2017년에 일본의 3개 회사(NYK, MOL, K Line)가 통합, 공동투자하여 ONE(Ocean Network Express)을 설립한 점, 그리고 한진해운이 파산한 사실이다(HMM이 Top 10안에 든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될 뿐이다). 아울러 컨테이너 물동량이 2배 정도 증가했으며, 2M으로 불리는 머스크(Maersk)와 MSC의 순위가 바뀌었다(2023년).

또한 눈여겨 봐야할 부분은 글로벌 Top 5의 점유율이 크게 증가하였다는 사실이다(2010년: 45.8%, 2023년: 64.8%). 즉 Top 10 컨테이너선사들은 금융위기 이후에도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는 것이다.

 

글로벌 컨테이너선사 규모 현황(출처: Alphaliner, 저자 재구성)

 

해운업계는 20세기 후반부터 '해운 얼라이언스(Alliance)'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최근 머스크와 MSC의 '2M 언라이언스' 해체 발표에 이어 머스크와 하파그로이드(Hapag-Lloyd)가 2025년부터 새로운 얼라이언스인 '제미니 코퍼레이션(Gemini Cooperation)'을 구성하기로 하면서 해운 얼라이언스 구조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정확한 이유를 밝혀지지 않았지만 MSC는 컨테이너 선대 규모를 늘려 해운업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머스크의 경우는 해운을 포함한 내륙운송, 항만운영, 물류창고, 디지털 플랫폼 등을 통합하는 종합물류기업으로 전환을 계속 추진 중이며, 반면 하파그로이드는 컨테이너 해운 자체의 효율성과 전문성에 집중하고 있다(출처: 내일신문, 2025.4.8.).

'해운 얼라이언스'란 '해운동맹(Shipping Conference)'의 개념에서 발전한 형태로 해운사간 협력을 강화하고 운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제휴를 맺은 연합체를 의미한다. 선사 간 선복량을 공유하고, 운항경로를 최적화하며, 항만 터미널과 물류 인프라를 공동으로 사용함으로써 비용을 절감하고 효율을 향상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참고로 해운동맹은 특정 항로를 이용하는 선사들 간의 경쟁으로 인한 손해를 막기 위해 운임 답합을 주된 목적으로 결성한 국제 카르텔(Cartel) 형태이다.

참고로 머스크와 하파그로이드는 '제미니 코퍼레이션' 얼라이언스를 통해 선박 스케줄의 90% 신뢰도 달성이라는 목표를 설정했다. 또한 주요 환적 허브 항만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차별화하겠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 글로벌 항만을 긴장시키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해운 얼라이언스 재편으로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치킨게임이 재현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해운업계의 치킨게임 양상이나, 각자의 이익에 따라 적도 동지도 없이 수시로 재편되는 얼라이언스를 볼 때, 금융위기 이후 한진해운을 잃은 한국으로서는 3% 정도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HMM의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지난 9월 HMM은 기존 '디 얼라이언스(THE Alliane)'에서 MSC와 협력하여 신규 협력 체제인 '프리미어 얼라이언스(Premier Alliance)'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개인적으로는 국적선사 대부분이 규모가 작은 것도 현 시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

 

친환경선박과 자율운항선박 등의 출현으로 해사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현재,

우리의 해운업계는 불확실한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

해운 얼라이언스의 변화(출처: KOBC, Alphali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