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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쏠쏠한 바다 이야기/조선, 해양, 그리고 해운

(알쏠바잡-5.1) 배에 얼마나 많은 물건을 실을 수 있을까?

나는 대학교에서 학사과정으로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했다. 비록 석사과정 이후는 조선해양과 해운을 포함한 해사(Maritime) 분야로 자리를 옮겨서 전문지식을 넓히고 있지만...
 
그래서 그런가. 최근 텔레비전을 보던 중 한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귀가 쏠렸다.
때는 1981년 2월, 레닌그라드 인근에서 소련 해군 VIP 수송용 여객기(Tu-104)가 이륙 8초 후 추락으로 탑승인원 전원(약 50명)이 사망한 사고였다. 이 사고로 16명의 제독을 포함해 소련 해군 태평양 함대의 수뇌부가 거의 전멸함에 따라 소련의 충격은 상당히 컸다(참고로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사망한 소련 해군 제독은 4명에 불과하다).
 
사고 당시 소련은 태평양 지역에서 해상 도발을 하려는 제국주의자들의 소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사결과 비행기는 과적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소련은 만성적인 생필품 부족사태였고, 특히 태평양 함대가 있던 극동지방은 정도가 심해 승객들은 사재기하려고 산 온갖 물건들을 실었고, 이 때문에 비행기는 과적 상태가 된 것이었다. 또한 조종사가 항의했지만 계급으로 묵살당한 것도 조사결과 드러났다. 하지만 결정타를 날린 것은 하나에 500kg짜리 인쇄용지 두 묶음이었다. 태평양 함대 사령부가 자체 신문 인쇄를 위해 구입한 것인데, 이걸 비용 절감을 한답시고 별도 수송편을 편성하지 않고 수송기에 같이 싣고 가기로 한 것이다. 문제는 이 종이의 무게도 무게지만 화물칸에 제대로 묶지 않았고, 그 때문에 이륙중 갑자기 화물칸 뒤로 굴러가면서 무게중심이 조종사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뒤로 쏠려버린 것이다(출처: 월간 플래툰(https://www.platoon.co.kr/)).
 
오늘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관련이 있긴 하지만, 배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서론이 너무 길었다.
그러나, 2014년 세월호 사고 주요원인 중 하나로 화물 과적이 지목된 것 처럼 비행기뿐만 아니라 배도 적재 한도를 초과해서 화물을 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는 지 알 수 있다(이와 관련하여 이 블로그의 글 <타이타닉호 사고보다 더 많은 사상자를 낸 해양사고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그렇다면 배에는 물건을 얼마나 실을 수 있을까?
 
배(선박)는 얼마나 많은 물건을 실을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지표로 Dead Weight Tonnage(DWT, 재화중량톤수)를 사용한다. DWT는 선박이 안전하게 적재할 수 있는 총 중량으로 화물, 연료, 승무원, 승객, 식수, 식량 등 모든 적재할 수 있는 무게를 의미한다. 아울러 DWT는 톤수(tonnage)로 계산되며, 선박이 적재할 수 있는 화물의 최대 중량을 나타내므로 선박 설계나 매매 등에 중요하게 사용된다.
 
어릴 적 목욕탕에서 세숫대야를 가지고 논 적이 있는가? 세숫대야에 물이나 물건을 조금씩 넣다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가라앉는다. 그 순간까지 세숫대야에 실은 무게가 바로 세숫대야에 적재할 수 있는 최대 중량이다.
 
선박의 옆면을 보면 아래 그림과 같이 안전한 항해를 위해 계절이나 해역에 따라 허용되는 선이 있다. 우리는 이 선을 만재 흘수(Full Load Draft)라고 하며, 이 때 수면과 선박의 교선을 만재흘수선(Load Line)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선박은 계절이나 해역에 따라 만재흘수선까지만 화물을 실을 수 있으며, 그보다 더 실으면 선박이 침몰할 수 있다. 참고로 흘수(Draft 또는 Draught)는 선박이 물 속에 잠기는 깊이를 말한다.
만재흘수선은 1875년 영국에서 처음 법제화되었으며, 이후 국제해사기구(IMO)에서 1966년에 국제만재흘수선협약(ICLL: International Convention on Load Line)을 채택하여 선박의 크기, 종류 및 항해하는 해역에 따라 선박이 적재할 수 있는 흘수에 대한 제한을 설정하여 선박의 안전을 보장하고 있다. 
 
요약하면 재화중량톤수(DWT)는 우리가 선박에 얼마나 많은 물건을 실을 수 있는지 나타내는 지표임과 동시에 선박의 효율적인 운용과 안전을 위한 중요한 기준이 된다.
 

선박의 만재흘수선(Load Line)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JJseCGdai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