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23년 가을 어느 일요일, 평소처럼 영풍문고에 책 사냥을 하러갔다. 그러다 우연히 맞은 편에 캘리그라피 공방을 발견하고 바로 등록을 했다.
그리고, 2024년 초에 선생님은 작년에 이어 올해 회원전을 개최할 예정인데 작품을 낼 의향이 없는지 물어보았다. 이제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초보자인 나에게...
결국, 2024년 따스한 봄날 캘리그라피 회원전(제2회 이은경 캘리그라피 회원전)이 열렸고, 나의 작품도 걸렸다.
나의 첫 번째 작품의 글귀로 안도현 시인의 '연탄 한 장'을 고른 이유는 2022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에 울컥했던 기억 때문이었다. 극 중 한 회사의 부부 직원 중 해고된 여성들을 변론한 류재숙 변호사가 해고된 여직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기 전 안도현 시인의 ‘연탄 한 장’을 낭독했다.
나도 나의 재능을 이용해서 힘 없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날을 상상해 본다.
아래에 첫 전시회에 출품했던 나의 작품과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의 이해를 돕고자 안도현의 시 <연탄 한 장> 전문을 남긴다.

<연탄 한 장>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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