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봄, 둘째 딸이 학교 친구와 이야기하던 모습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가족들이 스코틀랜드에 온지 한 달 정도 되었던 시기로 4살된 둘째 딸은 유치원(Nersery)에 다니고 있었다. 학교 수업이 끝난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가 둘째 딸이 유치원 앞에서 친구와 이야기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첫째와 같이 둘째의 경우에도 한국에서 영어를 전혀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신기하기도 하고 어떻게 영어를 말하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살금살금 다가갔다.
둘째는 한국말(약간의 제스처와 영어가 들어간)을 하고 있었고, 친구는 영어로 말을 하고 있었다.
대화가 된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영국에 가기 전에는 딸들이 잘 적응할지 걱정했는데 진짜 문제는 나한테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언어는 저렇게 배워야한다는 아주 기초적인 사실을... 내가 경험한 바로는 어릴수록 변화된 환경에 잘 적응한다(당시 첫째 딸은 8살로 적응하는데 힘들어했다. 그래도 3달 정도 지나니 나의 영어 발음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인류는 변화에 적응하면서 진화해왔다. 그러나 급격한 환경 변화가 예상되는 불확실한 시대에서는 단순한 적응만으로는 부족하다(불확실성에 대해서는 추가로 저자의 글 <(모건 하우절: 불변의 법칙) 불확실성에 대하여>를 참고하기 바란다).
지구는 급격한 환경 변화로 인해 지금까지 5번 정도 대멸종을 경험했다. 한 때 지구를 지배하던 공룡들도 약 6천 5백만 년 전 백악기 말에 멸종했다. 강한 종이 살아남은 것이 아니었다.
극한 환경에 대한 뛰어난 적응력과 함께 다양성과 생태적 유연성을 가진 생물이 살아남았다.
우리는 다양성과 생태적 유연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유연성과 함께 다양한 시도가 동반되어야 한다.
최근 세계 2위 컨테이너 해운선사인 머스크(Maersk)는 메탄올 추친 컨테이너선의 발주를 크게 늘려왔다. 국제해사기구(IMO)의 선박 온실가스 감축 전략과 이에 따라 초읽기에 들어간 해운부분 탄소세 도입을 준비하기 위해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는 대체연료 중 하나인 메탄올을 연료로 사용하는 선박으로 선대를 새롭게 재편하기 위한 결정이다('탄소세'에 대해서는 다른 글 <초읽기 들어간 탄소세 도입... 해운산업 경쟁력 가른다>를 참고하기 바란다).
그러나 작년(2024년) 말에 메탄올이 아닌 LNG(액화천연가스) 추진 대형 컨테이너선을 중국과 한국의 조선소에 대량(20척) 발주했다. 작년 하반기에 이 소식을 듣고 "메탄올이 기존 화석연료에 비해 2배 정도 비싸고 공급망이 충분하지 않은 이유로 머스크는 전략을 일부 수정한 것이가?"라는 생각이 들며 살짝 당황스러웠다.
이러한 의문을 품고 있던 중에 작년 말 머스크가 해당 선박을 발주한 한국 조선소에서 회의가 있어 갔다가 이에 대해 대답을 듣고 "역시 머스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메탄올에서 LNG로 전략을 바꾼 것이 아니라, 향후 상황에 따라 메탄올이나 암모니아를 사용할 수 있는 연료탱크 등의 설비를 설치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했다는 것이다(이러한 선박을 해당 업계에서는 메탄올 또는 암모니아 레디(Ready) 선박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머지않아 메탄올의 공급망이 안정적으로 구축되고 탄소세 도입으로 기존 화석연료와 가격 차이가 줄어든다면 언제든지 이 선박들을 메탄올 추친 컨테이너선으로 개조하여 기존에 발주한 동일한 연료의 선박들과 함께 '규모의 경제'를 이루고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복안이 담겨있는 것이다.
즉 어떤 대체연료가 향후 대세가 될 지 모르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일부 선박에 새로운 시도를 해 보는 것이다.
비록 2023년에 세계 1위 컨테이너선사 위치를 스위스의 MSC에 넘겨줬지만 덴마크의 머스크는 오래전부터 새로운 시도를 자주하는 도전자(Challenger)로서 유명하다. 또한 최근에는 독일의 하파그로이드(Hapag-Lloyd)와 함께 새로운 해운 얼라이언스(Alliance)를 맺고 종합물류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이와 관련해서는 다른 글 <(알쏠바잡-10)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 해운 얼라이언스>를 참고하기 바란다).
이렇듯 변화는 적응을 필요로 하고,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유연성과 함께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
새로운 시도에는 항상 시간과 비용을 수반한다. 그러나 이러한 투자가 아깝다고 결정을 계속 미루거나 모르는 척 넘어간다면 그 불확실성은 반드시 위기로 다가온다.
나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새로운 시도를(또는 도전) 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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