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으로 인한 해양오염 피해를 막기위해 폭격기가 폭탄을 투하했다면...
우리나라 많은 사람들이 2007년에 발생한 '태안 기름 유출 사고(삼성1호-허베이 스피릿호 원유 유출 사고)'를 기억할 것이다. 사고 이후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자원봉사자 (연 964,000여 명)들이 수작업으로 기름때를 제거하는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2007년 12월에 해상 크레인 삼성1호와 유조선(원유 운반선) 허베이 스피릿호가 충돌해서 1만 2,000킬로리터가 넘는 원유가 태안 인근 해역으로 유출된 사건이다(이 사건에 대해서는 향후 기회가 된다면 따로 다루도록 하겠다).
그런데 기름을 제거하기 위해 폭격기가 바다에 폭탄을 투하한다니...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1967년에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1967년 3월 18일, 유조선 토리 캐니언호(Torrey Canyon)는 쿠웨이트산 원유 약 12만톤을 희망봉을 돌아 운반하던 중 거센 조류로 항로를 이탈해 영국 남서부 콘월(Cornwall) 연안에 가까이 다가간다. 예정된 항해 일정보다 늦어져 조바심을 내던 선장은 선박의 속도를 줄이지도 항로를 변경하지도 않을 채 최대속도(약 15.7노트)로 암초를 돌파하다가 정면으로 충돌하여 좌초된다. 이로 인해 토리 캐니언호의 18개 원유 탱크 중 14개 탱크가 파손되면서 대량의 원유가 해상으로 유출된다. 이 사고로 약 11만 9천 톤의 원유가 유출되었고, 영국과 프랑스 해안선까지 오염이 확산된다.
참고로 토리 캐니언호는 라이베리아 선적(flag of registry)이며, 미국 선사인 Union Oil사가 소유한 길이 297m, 너비 38.2m의 118K DWT(Deadweight) 유조선이다.
사고 직후 영국 정부는 유출된 기름을 중화할 수도 없고, 선박에 남아있는 원유를 빼낼 방법도 없다는 말을 듣고 '해군을 동원해 토리 캐니언 호를 폭격하고 기름을 불태운다'는 결정을 내린다(참조: 위키피디아).
정부의 결정에 따라 영국 해군은 폭격기 8대를 동원해 대규모 폭격을 단행한다. 이 때 네이팜탄을 포함해 로켓탄 11발, 약 2만 8,000 킬로그램(약 6만 2천 파운드)의 폭탄을 투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유출된 기름은 결국 영국 남부 해안과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으로 번지게 되고 수많은 해양생물과 심지어 철새들까지 죽었으며, 피해지역을 복원하는 데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
토리 캐니언 대형 원유 유출 사고는 국제사회에 해양오염에 대한 경감심을 불러일으키며, 해양환경 보호와 기타 관련된 다양한 국제해사기구(IMO) 협약을 탄생시키게 된다.
첫 번째, 해사 안전과 관련된 SOLAS(해상인명안전협약: International Convention for the Safety of Life at Sea)과 함께 IMO의 가장 중요한 협약 중 하나로서 선박으로부터 발생하는 해양오염을 방지하고 규제하기 위한 협약인 해양오염방지협약(MARPOL: International Convention for the Prevention of Pollution from Ships)의 탄생이다. MARPOL은 1973년에 IMO가 채택하였으며, 이후 1978년 채택된 의정서(1978 MARPOL Protocol)를 추가하여 1983년에 발효된다(현재 'MARPOL 73/78'로 불림).
참고로 MARPOL은 현재 20개 조문(Article)과 6개 부속서(Annex)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부속서는 유류 오염(Annex I), 유해 액체물질(Annex II), 유해물질의 해상운송(Annex III), 오수 오염(Annex IV), 폐기물 오염(Annex V), 그리고 대기 오염(Annex VI) 방지를 다루고 있다.
두 번째, 선원의 전문성 부족이 사고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인식함에 따라 IMO는 1978년 선원훈련·자격증명 및 당직 기준에 관한 국제협약(STCW: International Convention on Standards of Training, Certification and Watchkeeping for Seafarers)를 채택한다(1984년 발효). 이 협약은 선박 운항의 안전성을 높이고, 해양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체계적인 선원 관리와 교육을 도입하여 표준화된 선원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세 번째, 토리 캐니언 사고와 같은 유류오염 사고 발생 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국가의 긴급 개입이 필요하다는 점이 부각됨에 따라 IMO는 1969년 유류 오염 사고시 공해상 개입에 관한 협약인 Intervention 1969(International Convention Relating to Intervention on the High Seas in Cases of Oil Pollution Casualties 1969)를 채택한다(1975년 발효). 이 협약은 해양오염 사고가 자국 해안에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을 경우, 피해가 예상되는 국가가 신속히 개입하여 방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네 번째, 유류오염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고로 인한 피해복구 비용과 배상 문제에 대한 법적 구조의 문제가 드러남에 따라 IMO는 1969년 유류오염 손해에 대한 민사책임에 관한 협약인 CLC 1969(International Convention on Civil Liability for Oil Pollution Damage 1969)를 채택한다(1975년 발효). 이 협약에 따라 선주(ship owner)는 유류 유출 사고 발생 시 피해를 입은 지역사회와 환경에 대한 책임을 지고 배상해야 하며, 이에 대비해 보험에 가입하도록 요구된다.
끝으로 CLC 1969만으로 피해 배상에 한계가 있어 이를 보완하기 위해 IMO는 1971년 유류오염 손해보상을 위한 국제기금 설치에 관한 협약인 FUND 1971(International Convention on the Establishment of an International Fund for Compensation for Oil Pollution Damage 1971)를 채택한다(1978년 발효). 이 협약에 따라 국제기금이 조성되었고, 배상 한도를 초과하는 피해에 대해서는 이 기금을 통해 추가적인 보상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다.
이렇듯 토리 캐니언 사고는 MARPOL을 비롯한 다양한 협약들이 채택되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으며, IMO는 이를 바탕으로 해양 안전과 해양환경 보호를 체계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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