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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그리고 나의 이야기

(마이클 샌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그러나 우리를 지배하는 것

"우리나라도 최근에 이것을 더 내면 놀이기구를 타려고 오랜 시간 줄서지 않고 빠르게 탈 수 있어요."

최근에 회사 동료가 하는 말을 듣고 놀랐던 적이 있다(몇 년간 놀이공원을 가지 않아서 몰랐다).

이 말을 듣고 나서 우리나라도 이제는 이것으로 공공장소에서 버젓이 시간까지 살 수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조정래 작가의 책 <황금종이>에서는 아래와 같이 말하면서 우리들에게 이것의 마력에 휘말려 비극적 주인공이 되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다.

"우리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날마다 써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갖게 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의식, 무의식 중에 날마다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지니면 힘이 나고, 없으면 힘이 빠지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남에게 줄 때는 쉬워도 남에게 얻기는 어려운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너나없이 가장 갖기를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행복과 불행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삶에서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어느 만큼 지니지 못하면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박탈해 버리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전혀 갖지 못하면 곧바로 죽음과 맞닥뜨리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하여 5,000여 년에 걸쳐서 줄기차게 우리를 지배해 온 것은 무엇일까."

 

다시 놀이공원의 '패스트 트랙' 이야기로 돌아가자.

돈을 주고 시간을 사는 패스트 트랙에 대해서 찬성하는 쪽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원하는 재화를 돈 주고 사는 것은 당연하다."라는 의견이었다. 이와 다르게 반대하는 쪽은 "먼저 줄을 선 사람이 서비스를 받는 건 당연한 것이지만 이 경우에는 돈을 더 낸 사람에게 새치기를 할 수 있는 권리를 준 것이다. 아이들이 이 모습을 보고 어떤 가치를 배우게 될지 생각해봐야한다."는 의견었다.

 

이와 관련해서 마이클 샌털의 책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는 다양한 사례를 들어 시장 지상주의의 맹점을 지적하며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돈과 시장의 한계를 설정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책에서 인상깊게 읽은 세 가지 사례에 대해서 말하겠다.

 

첫 번째,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이슈인 지구 온난화에 대한 이야기로 책에서는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부유한 국가들이 자국의 환경파괴적인 습관을 바람직하게 바꿔야 할 의무를 돈으로 벗어던질 수 있게 한다면, 자연에 대한 잘못된 태도를 강화시켜서 지불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자연은 쓰레기장이 되어 버린다."

 

두 번째, 돈이 시장에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고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1970년에 출간한 <기증 관계>에서 티트무스는 영국과 미국 양국의 혈액모집 시스템을 비교했다. 영국은 보상을 받지 않는 자발적인 기증자에게서 혈액 전량을 확보하는 반면, 미국은 일부 혈액은 기증받고 일부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혈액을 팔려는 사람들로부터 구입하여 혈액은행을 충당한다. 티트무스는 경제적·실용적 조건만을 따져서도 영국의 혈액모집 시스템이 미국보다 낫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풍부한 자료를 제시했다. 그는 시장이 효율적이라는 가정에도 불구하고 미국 시스템의 경우 고질적인 혈액 부족 현상, 혈액 낭비, 고비용, 오염된 혈액이 유통될 위험성 증가가 따른다고 주장했다."

 

세 번째, 내가 좋아하는 야구와 관련한 사례로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20세기까지만 해도 야구경기장은 기업 임원과 블루칼라 노동자가 나란히 앉아 경기를 관람하고, 핫도그나 맥주를 사기 위해 똑같이 줄을 서며, 비가 오면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가리지 않고 젖는 곳이었다. 하지만 경기장 높이 자리한 스카이박스가 등장하면서 부자와 특권 계층은 아래의 일반 관람석에 앉는 보통 사람들과 분리되었다. 비싼 입장료를 받는 스카이박스는 야구장의 훌륭한 수입원이 되고 이를 이용하는 관객도 만족스런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니 장려해야 할 제도일까? 세대와 계층 간의 차이를 뛰어넘어 같은 팀을 함께 응원하던 공감대와 연대의 가치는 변질되어도 괜찮을까?"

 

끝으로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놀이공원에서 너 나 할 것 없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간까지도 미국과 일본처럼 돈으로 살 수 있어야 진정한 자본주의 국가일까?

돈을 지배할 것인가? 지배당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