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메신저(예: 카카오 톡)나 동영상 플랫폼(예: 유튜브) 앱(Application)을 삭제하고 싶을 때가 있다(쇼셜 미디어는 하지 않는다).
특히 일과 관련된 단체 대화방에서 계속 알림을 주거나, 알고리즘을 통해 내가 관심을 가질만한 영상을 끝없이 추천해주는 동영상 플랫폼을 보다가 그 시간에 하려고 했던 것을 하지 못했을 때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매번 다른 핑계를 대며 앱을 삭제하기 직전에 무릎을 꿇고 만다. 대신 한 시간만이라도 집중하기 위해서 알림이 오지 않도록 앱을 설정해두고 있다(보고싶을 때만 확인한다).
요한 하리의 책 <도둑맞은 집중력>에서는 내가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집중력은 알고 보면 누군가가 훔쳐 간 것이고, 그 도둑은 바로 실리콘 밸리의 IT기업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책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가 보는 화면 반대쪽에는 우리의 자제력을 꺾으려고 노력하는 천여 명의 엔지니어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집중력을 잃어버리는 책임은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에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집중력과 관련된 그 외 주제도 다루고 있다.
혹시 기억하는가?
2021년 2월까지 우리나라 포털 사이트에서는 실시간 검색어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 서비스를 폐지한 데에는 개인적으로 크게 2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중 하나만 말하자면 정보의 다양성 측면이다. 일방적으로 포털 사이트에서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검색 순위에 따라 콘텐츠를 소비하기 보다는 개인 의지에 따라 콘텐츠를 소비하고 직접 생산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도서관 앱을 통해 주간지를 읽곤 한다. 내가 받아들이는 지식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아침마다 종이로 된 신문을 보고 싶지만, 한 권(보통 70페이지가 넘는다)의 주간지에 담겨있는 다양한 기사들을 통해 보다 넓고 균형잡힌 시야를 가지기 위함이다. 한때 영국에서 근무했을 때는 낯선 문화도 알고 영어 공부도 할 겸 매일 출근길에 대중교통에 비치된 무료배포 신문(Metro)을 가져다 읽었다.
요한 하리의 책에서는 아래와 같이 우리의 생각이 이러한 정보(또는 정책)들로 얼마나 편향될 수 있는지를 경고하고 있다.
"40여 년 전 비만 위기가 시작되었을 때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환경의 변화 없이 개인의 자제력을 기르는 노력만으로는 니르처럼 20명 중 한 명꼴의 사례를 제외하면 좀처럼 효과가 없다는 증거에 귀를 기울일 수도 있었다. 정부 정책을 이용해 신선하고 영양가 높은 식품은 저렴하게 구하기 쉽게, 설탕이 잔뜩 들어간 정크푸드는 값비싸고 구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었다.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은 나머지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게끔 만드는 요인들을 제거할 수도 있었다. 사람들이 쉽게 걷거나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도시를 만들 수도 있었다."
돌고 돌아 결국 나의 문제로 돌아온다.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나는 도둑들로부터 집중력을 지킬 수 있을까? 또 도둑들에게 조금이라도 그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끝으로 이 책에서 묻고 있고 우리가 생각해봐야 하는 아래 질문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우리가 우리의 집중력을 퇴화시키고, 복잡성과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는 능력을 퇴화시키고, 공유된 진실을 퇴화시키고, 우리의 신념을 음모론적 사고로 퇴화시키면, 그래서 의제를 구축하고 공유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현재 전 세계의 가장 긴급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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