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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한 나의 이야기

(영국 교통 문화에서 배우기) 정책이 문화를 바꿀 수 있을까?

나는 2014년 초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가족들과 같이 영국(정확하게 스코틀랜드)으로 넘어가서 2018년까지 4년여 기간동안 일을 하며 살았다.

영국에 가기 전 10년이 넘게 한국에서 운전을 했기 때문에 오랜기간 몸에 붙은 습관으로 처음 몇 개월간 영국에서의 운전은 쉽지 않았다. 영국은 한국과 운전석도 도로방향도 반대다(참고로 영국, 일본, 뉴질랜드, 싱가포르는 차는 좌측통행, 사람은 우측통행을 한다).

 

그러나 이후 이러한 영국 교통문화에 익숙해지고 나서는(차가 없는 도로에서는 한 번씩 반대 차선으로 달리기도 했지만) 기본적인 운전 예절만 지키면 상당히 편하고 안전하며, 한 번씩 기분좋은 일도 생긴다는 사실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느꼈다.

 

정책이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고, 바뀐 행동이 지속가능한 문화로 정착해서 모든 사람들이 그 혜택을 누리기까지는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린다. 당연히 겉보기에 좋아보인다고 역사와 문화(관습을 포함해서)가 다른 나라의 정책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새로운 또는 수정된 정책은 추가적인 인력과 국민의 소중한 세금이 들어간 예산이 투입되기 때문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 기존 정책과의 장단점을 먼저 살펴봐야 하며, 우리나라 상황과 국민인식, 문화 등을 감안한 단기, 그리고 중장기 영향을 검토한 후 결정해야 한다.

 

좋은 정책을 만들어 추진하더라도 실질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이러한 효과가 궁극적으로 국민적 공감대와 함께 지속가능한 문화로 정착하기까지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걸린다. 이런 이유로 이제는 우리나라도 대통령 연임제를 고려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정치적인 논리로 정책을 바라보거나, 단기적인 정책에 집중해서는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서론이 길었다. 아래 내용은 영국에 살면서 눈에 띄었던 교통 문화(우리나라도 최근 일부 도입)다. 오해는 없기를 바란다. 각 나라의 문화는 그 뒤에 역사적인 배경 등을 가지며,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교통문화 1. 라운드어바웃(Roundabout)

우리나라에서는 '회전교차로'로 불리며, 최근 조금씩 설치가 늘어나고 있다. 교통체계가 우리나라와 반대인 영국에서는 시계방향(clockwise)로 회전해야하며, 오른쪽에서 진입한 차에게 우선권이 있어서 그 차들이 지나간 후 진입해야 한다. 그리고 라운드어바웃 진입후 출구쪽으로 진입하려면 왼쪽 깜박이(방향 지시등)를 켜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문화가 작동한다. 내가 영국에서 운전하면서 느낀 바는 평소에는 양보도 잘하고 경적도 울리지 않지만 라운드어바웃 체계(특히, 오른쪽에서 먼저 진입한 차가 있는데, 잠시 그 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진입할 경우. 사실,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를 어겼을 경우, 격렬하게 반응하는 것을 느꼈다(경적을 울리거나 때에 따라 욕을 하기도 한다). 또한 전·후방에 차가 있으면 깜박이를 켜서 자신이 가고자하는 방향을 사전에 알린다(깜박이는 장식품이 아니라, 주변 차 운전자에게 내 차의 방향을 미리 알림으로써 서로의 안전을 지키는 수단이다).

 

영국 라운드어바웃 규칙 (출처: https://zutobi.com/uk/car/roundabouts)

 

교통문화  2. 교차로 노란박스(Yellow Box in Junction)

우리나라에서는 소방소 앞 도로에 정차금지지대를 알리는 선이 있다. 영국은 소방소뿐만 아니라 아래 그림과 같이 교차로에 노란박스를 표시하여 무리한 꼬리물기로 교차로에 들어섰다가 신호가 바뀌어도 노란박스를 빠져나가지 못하면 위반차량에게 고액(10만원이 넘는)의 과태료를 부과한다(우리나라도 최근 일부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교통량이 많은 시간에 꼬리물기로 인한 극심한 교통정체(한국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다)를 막기 위해 마련한 제도이다.

 

교차로 노란박스 (출처: https://www.highwaycodeuk.co.uk/road-junctions.html)

 

교통문화  3. 상향등 두 번 연속해서 켜기

스코틀랜드에서 운전하면서 제일 처음 알게된 교통문화다. 당시 우회전을 하려고 깜박이를 넣고 있는데 앞에 있는 차가 상향등을 두 번 연속해서 켜더니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왜 그러는지 몰라 앞차가 지나가기를 한참 기다리고 있는데 먼저 우회전을 하라고 손짓을 하고 나서야 양보(경고나 불만의 표시가 아닌)의 의미인지 알았다. 이후 상향등을 이용한 양보 메세지를 자주 보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양보의 기쁨을 알게 되었다(특히, 내가 양보했을 때 상대 운전자가 엄지손가락을 올리는 등 감사의 표시를 할 경우).

 

한국으로 돌아온 후 지금도 운전할 때 한 번씩 옆 창문을 열고 엄지손가락을 올릴 때가 있다. 안타깝지만 옆 차선으로 가려고 깜박이를 넣었는데 도저히 양보를 해 주지 않을 때이다.

그러나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난다. 문화를 바꾸지 못해 오늘도 나만의 방식으로 사람의 마음에 호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