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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그리고 나의 이야기

(SBS 스페셜: 리더의 조건) 나는 리더의 자격을 갖추었는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알려진 호세 무히카 전 우르과이 대통령이 2025년 5월 13일 향년 89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이 뉴스는 단박에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책꽂이에 꽂아둔 채로 먼지만 쌓여있던 책 <리더의 조건>을 다시 꺼내 들었다. 'SBS 스페셀 제작팀'이 만든 이 책에서 호세 무히카 전 대통령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이 생각나서 다시 그 부분을 읽어보고 싶어서였다.
참고로 나는 다시 볼 책이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아니면 대부분 중고서점에 판다. 나에게 책은 소장에 목적이 있지 않다. 쓸데없이 책꽂이를 차지하고 나의 집중력을 흐리게 하지도 않으며, 이사 갈 때도 편하다. 이 책을 다른 데로 보내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블로그를 시작할 때부터 언젠가는 '리더'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다.
그러나 '리더'라는 주제는 블로그 글에 담기에는 너무도 거대해서 나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아 계속 미루고 있었다. 결국 호세 무히카 대통령의 별세 소식에 더 이상 글을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다룬다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한몫했다.
사실 2017년에 읽은 이 책을 비롯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무현의 리더십 이야기>, 이와모리 가즈오의 <왜 리더인가>, 기시미 이치로의 <리더는 칭찬하지 않는다> 등 리더에 대한 책들을 꾸준히 읽어오고 있었다. 나머지 책들에 대해서는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다루도록 하겠다.
 
얼마 전 회사 동료가 나에게 '조용한 퇴사(Quite Quitter)'라는 말을 아는지 물었던 기억이 난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이후 동료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조용한 퇴사'는 실제 퇴사를 하진 않지만 자신이 맡은 최소한의 업무만 처리하고 그 이상 회사에 기여하려는 의지는 없는 상태를 말한다. HR테크기업 인쿠르트가 1,09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현재 조용한 퇴사 상태인지' 묻는 질문에 2명 중 1명이 그렇다고 답했다고 한다(출처: Fortune Korea, 2024.5.13.).
놀랍기도 하지만 참 풀기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도 든다. 단순히 현재 'MZ 세대'의 문화나 분위기라고 말하기에도 어려운 것 같다(사실 나는 'MZ 세대'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괜히 세대를 갈라치기하는 말 같아서 싫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맡은 일 이상의 기여에 대한 공정한 평가와 시의적절하게 보상해주는 시스템이 없어서 일 수도 있다. 또는 회사의 비전과 목표가 불명확할 수도 있고, 있다고 하더라도 개개인의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거나 일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동료 또는 리더가 없어서 일 수도 있다.
기관을 운영하다 보면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일들을 해결하느라 정신없이 보낼 때가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기관이 지속가능하게 성장하고 나아가기 위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다. 그 이유는 바로 가장 중요한 사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나도 좀 더 생각해 봐야겠다. 아무튼 물어 본 동료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이 대목에서 책의 내용 중 '제니퍼소프트'의 이원영 대표의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리더는 구성원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구성원들이 공동의 뜻을 세우고 각자 맡은 일을 잘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그에 필요한 환경을 조성해주는 사람이 바로 리더라고 생각해요."
 
다시 무히카 대통령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그는 지난해 4월 식도암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이어오다 지난 1월 항암 치료를 포기했다고 한다. "내 몸이 더 이상 치료법을 견딜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는 1960~1970년대 군사독재에 맞서 좌파 게릴라 단체에서 활동하고 13년간 수감생활을 했으며, 사면 후 정치에 뛰어들어 정당 '국민참여운동'을 이끌며 국회의원과 장관을 역임한 후 2009년 대선에서 당선되어 5년간 국정을 이끌었다. 급여의 90%를 빈곤퇴치 단체 등 사회운동에 기부했고, 재임 당시 13%의 실업률을 7%로, 40%의 빈곤율을 11%로 낮췄다. 또한 관저 대신 몬테비데오 교외의 텃밭 딸린 작은 집에서 살면서, 1987년형 하늘색 폭스바겐 비틀을 타고 직접 출퇴근을 하는 등 그의 청빈한 리더십은 국민의 큰 사랑을 받았고 퇴임 무렵 지지율은 64%였다(출처: 경향신문, 2025.5.14.).
 
책에서 말하는 또 다른 리더, 전 핀란드 대통령 '타르야 할로넨'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할로넨 대통가 우리에게 처음 알려진 것은, 2002년 김대중 대통령의 초청으로 한국 당문 당시 그녀가 보여준 모습 때문이다. 당시 한국 정부는 국빈으로 방문한 그녀에게 모든 편의를 제공했으나 그 대부분을 거절했다고 한다. 직접 준비해온 다리미로 외출복을 손수 다려 입고 호텔 측에서 준비한 전문 미용사의 머리 손질도 거절했다. 한국에서 그녀의 행동은 신문의 날 만한 일이다.
12년 동안 핀란드 대통령으로서 성실하게 국민에게 봉사했으며, 재임 기간 동안 지지율이 90%에 이르기도 했다. 놀라운 사실은 퇴임 당시 지지율이 80%를 웃돌았다는 것이다. 국가 청렴도 1위, 국가 경쟁력 1위, 환경지수 1위, 학업성취도국제비교 1위. 이 모든 것이 그녀의 재임 기간 이루어 낸 성과이다.
"리더란 변화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국민들이 변화를 만들어내도록 이끄는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나에겐 전직 대통령이란 타이틀이 평생 따라다니겠지만, 지금처럼 사는 게 나중에 대통력직에서 물러나 보통 사람으로 사는 데 훨씬 더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뇌리를 스치는 말들이다. 그리고 '보통 사람'... 그가 생각난다.
 
스웨덴 국회의원의 이야기도 한국인으로서 낯설게 느껴졌다.
스웨덴 국회의원들에게는 개인 비서가 따로 없다고 한다. 의원들은 사무실로 걸려온 전화를 직접 받고, 일정 관리와 자료 정리도 직접 한다. 또한 스웨덴에서는 보통 보좌관 1명이 같은 선거구 출신 의원 4명을 보좌하기 때문에 웬만한 일은 국회의원 스스로 해야 한다. 영수증도 직접 처리한다. 우리나라는 작은 기관의 기관장도 대부분 이렇게 일하지 않는다. 
"스웨덴에서 국회의원은 해야 할 일은 많고 객관적인 특권은 없는 직업이라고 보면 됩니다. 게다가 3대 기피 업종 중의 하나라고 할 만큼 일이 힘들죠. 그러다 보니 선거 때면 전체 의원 중에서 3분의 1이 바뀌는데, 그중 절반 정도는 일이 힘들어서 더는 못 하겠다고 스스로 이직을 하는 경우입니다." 스웨덴 국회의원인 '수잔네 에버스타인' 의원의 말이다.
이렇게 권리는 적고 져야 할 의무만 많은 정치인의 길을 스스로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예전에 판사로 일하면서 스웨덴 사회에 여전히 불공평한 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런 점들을 바로잡기 위해 뭔가 의미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정치인이 되기로 결심했죠.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내가 실행한 국정조사들이 법률로 제정되거나, 아동학대 문제 등 여러 문제에 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변화시켜나갈 때면, 내가 정말 중요하고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뿌듯합니다."고 답했다.
 
도대체 이 책(그리고 'SBS 스페셜' 방송)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이고,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오늘(2025.6.3.)은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있는 날이다.
책에서는 소통의 리더십에 대해서 스웨덴 역사상 가장 훌륭한 정치인 중 한 명인 타게 에란데르(Tage Erlander) 총리를 다루고 있다. 그는 "리더란 자신을 지지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비판가의 시각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총리의 밤 행사에서 "당신은 절망적인 총리다. 당신은 국가 발전을 위해 노력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한 사회주의 학생회 회장이었던 한 청년을 반년 후, 자신의 비서로 채용했다. 총리를 비판하는 용기 있는 청년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 청년이 나중에 스웨덴 총리가 된 '울로프 팔메(Olof Palme)'다.
 
"정치는 끝없는 토론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다"라고 책은 말하고 있다.
오늘 선출되는 새로운 대통령은 겸손하고 열린 마음으로 각계각층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받아들여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소통하는 리더가 되길 바란다.
 
물론 나부터 리더의 자격을 갖춰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