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참여하고 있는 학회 이사회에서 서양학을 전공한 사학과 교수님의 초청강연을 들었다.
주제는 "해양혁명이 불러온 르네상스 미술시장의 변화"였다. 강연 자료의 첫 번째 슬라이드는 네덜란드 미술의 거장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의 유명한 작품인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이었다. 유명한 작품이라고 말을 했지만, 한 번 봤다는 정도지 작가가 누군지, 그림의 배경은 무엇인지 그 전에는 알지 못했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특히 미술 작품은 아는 만큼 보인다(또는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 전 출장 중에 쉬는 주말을 이용해서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에 간 적이 있었다. 같이 간 동료가 미술관 가이드 투어는 어떠냐고 대뜸 물어와서 그러자고 답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잘 한 답변이었다.
오르세 미술관을 방문하기 2시간 전, 미술관 앞에 있는 아담한 카페에서 가이드를 만났다. 공인 가이드 자격을 갖추지 못해 미술관 안에서 직접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말하면서 가져온 스크랩북에 있는 그림을 보면서 하나 하나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당시 오르세 미술관에서는 <반 고흐 특별전>을 하고 있었는데 미리 설명을 들어서인지 그림들이 나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던 기억이 난다.
참고로 오르세 미술관 건물은 파리의 '오르세역'을 개축한 것이다. 기술의 발달로 엔진 마력이 높아지게 되고 객차 수가 늘어나게 되면서 기존 기차역 플랫폼의 길이가 짧아서 폐쇄되었다가, 이후 몇 번의 용도 변경을 거쳐 지금의 미술관으로 새롭게 탄생하게 된 것이다. 유럽의 문화 선진국은 일찍이 건축 문화재를 소프트웨어로 보고 변화된 시대에 맞게 잘 사용하면서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출처: 유현준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하고 초청강연 이야기로 돌아가자.
교수님은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은 15세기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의 대표적인 그림으로서 해상 무역을 통한 사회의 혁명적인 변화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림은 이탈리아 출신의 아르놀피니와 그의 아내를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아르놀피니 가문은 고급 직물 무역을 통해 부를 쌓은 상인이었는데, 그림 속 부부는 값비싼 의상, 샹들리에와 고급 가구 등으로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을 과시하고 있다.
카메라 등이 없는 중세시대에는 일부 자산가나 권력자들이 이렇게 그림 등을 통해 자랑했다면,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SNS 등을 통해 자신을 뽐내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특히 그림의 오렌지와 거울에 대해 주목했다.
북유럽에서는 오렌지가 자라지 않기 때문에 남유럽에서 수입되는 값비싼 과일이어서 부유한 상인 계급만 누릴 수 있는 사치품이었다. 또한 그림 중앙에 걸려있는 볼록 거울은 당시 매우 비싼 사치품으로서 이탈리아(특히 베네치아)에서 수입한 물건이었다. 여기에서 베네치아(Venezia)가 왜 그토록 찬란한 해상 무역의 역사와 유리 공예품과 같은 특산물 등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지금은 외국산 오렌지는 동네 마트에서, 거울은 '다xx" 등에서 아주 싼 가격으로 쉽게 살 수 있지만, 당시에 이러한 수입품을 구하려면 해상 무역을 통해서만 가능했으며, 이를 실어나르는 배의 경우 바다의 다양한 위험이 따르므로 가격이 매우 비쌌던 것이다(이에 대해서는 블로그 글 <(알쏠바잡-6) 해상 보험, 저널, 그리고 선급의 시작점: 로이즈 커피하우스>를 참고하기 바란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베네치아와 같은 해양도시의 이야기로 넘어갔다.
우리가 흔히 쓰는 단어인 '브루주아'가 '부르크(burg)'와 관련이 있는지 아는가?
부르주아는 잘 알듯이 사회적·경제적으로 상류 계층 또는 자본가 계급을 말한다. 프랑스어인 'bourgeois'에서 유래된 말로 라틴어 'burgus(성 또는 요새)'와 그 파생어 'burgensis(성 안의 주민)'에서 비롯되었으며, 중세 유럽에서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burg)에 사는 사람들을 가리켰으며, 대게 상공업자, 상인 등 경제적 자립 기반을 가진 계층을 지칭하였다.
11세기경부터 유럽의 도시가 성장하고, 상업과 금융 등의 산업이 발달하면서 부르주아 계층은 경제적 실권을 쥐게 되었고, 근대 시민혁명(예: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주체로 성장하면서 그 의미가 자리 잡게 된다.
즉, 중세 유럽에서 해상 무역을 통해 경제적 실권 등을 가지게 된 상인들이 사는 곳을 'burg'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흔적은 해양도시의 이름에서 찾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그(Saint Petersburg)', 독일의 '함부르크(Hamburg)'가 있을 것이다. 파생된 접미사를 쓰고 있지만 영국의 '미들즈브러(Middlesbrough)'도 동일하다.
다양한 이야기가 있지만, 바다로 나아가기 위한 러시아의 열망과 관련이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나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해안선은 북극해와 같이 겨울철에 얼어붙는 지역에 위치해 있어 러시아는 연중 내내 얼지 않는 부동항(不凍港)을 확보하는데 오랜 기간 집착해왔다. 부동항이 없다는 것은 해상 무역뿐만 아니라 군사적 측면에서 큰 제약을 받는 다는 것을 뜻한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남하 정책을 펼치며 흑해, 발트해 등 다양한 해역에서 부동항 확보를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해왔다.
사실 상트페테르부트크는 완전한 부동항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세기에 러시아 표트르 대제가 이 항구도시를 발트해에 건설하여 유럽으로 진출하기 위한 전략적 발판으로 사용했다. 실제로 1712년 모스크바에서 이 도시로 수도를 옮겨 1918년까지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라는 말이 있다.
16~17세기 영국의 군인이자, 탐험가, 그리고 시인인 '월터 롤리(Walter Raleigh)'의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무역을 지배하고, 세계의 무역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의 부를 지배하며, 마침내 세계 그 자체를 지배한다"라는 말을 19세기 미국 해군 제독 '알프레드 세이어 마한(Alfred Thayer Mahan)'이 해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집약해서 한 말이다.
이렇듯 바다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인 '해양도시'의 중요성은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얀 반 에이크의 이 그림은 현재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내셔널 갤러리에 3번 정도 갔었는데 몰랐다(작년에도 갔었는데, 반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 앞에서 30분 정도 멍때렸던 기억만 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다.
한 달 정도 후에 런던 출장이 계획되어 있다. 이제 알았으니 찾아서 자세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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